월간중앙 커버스토리 창간 특별 대담] 라종일 교수와 태영호 前 공사가 분석한 김정은의 내면
2019.03.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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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령을 신으로 받드는 나라에서 있어선 안 될 오류가 발생
■ 북한의 불안은 안보·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문제
■ 북한의 불안은 안보·군사적 문제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문제
“과신한 김정은 북·미 회담 실패로 심적 타격 클 것”
당근과 채찍 제공
■ 북한, 즉시적 도발 없는 동결 상태에서 실무회담에 나설 것
■ 北에 ‘핵협상 쉽지 않다’는 인식 준 것만으로도 성과, 文도 인내심 필요
■ 북한, 즉시적 도발 없는 동결 상태에서 실무회담에 나설 것
■ 北에 ‘핵협상 쉽지 않다’는 인식 준 것만으로도 성과, 文도 인내심 필요

[출처: 중앙일보] [월간중앙 커버스토리 창간 특별 대담] 라종일 교수와 태영호 前 공사가 분석한 김정은의 내면
북·미 회담의 결렬로 북핵문제가 길을 잃은 형국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계제로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어디에 발을 디디고 있으며,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아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 이제 북핵문제의 해결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달려있다. 답보상태일수록 나침반 같은 존재가 절실하다. 월간중앙이 창간 51주년 특별기획으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公使)와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의 대담을 마련한 배경이다.
태 전 공사는 2013년 4월 북한이 파견한 외교관 자격으로 영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3년4개월 동안 근무했다. 그는 2016년 8월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귀순했다. 탈북 외교관 중에서 최고위급이었다.
라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경희대에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1차장을 거쳐, 2001~2003년 영국 주재 한국 대사를 역임했다. 이때 영국에서 태 전 공사와 처음 만났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일본 주재 한국 대사로 일했고, 우석대 총장과 한양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와 국방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태 전 공사와 라 교수의 대담은 3월 10일 오전, 월간중앙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경호원들과 차량으로 함께 움직이는 태 전 공사가 먼저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사옥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차장에 정차된 차 안에서 라 교수를 기다렸다. 라 교수가 곧 도착하자 태 전 공사는 차에서 나와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대담 장소로 같이 자리를 옮겼다. 라 교수를 향한 태 전 공사의 예우였다.
라 교수도 태 전 공사를 만나자 “2001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지. 18년 만에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고 반겼다. 태영호 전 공사도 “그러고 보니 남한에 와서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이런 식의 대담은 처음”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북한 바깥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데 필생의 공력을 쏟아온 라 교수와 북한 내부에서 체제의 모순을 체감했을 태 전 공사는 상이한 삶의 경로만큼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르리라 여겼다. 그 생각의 차이와 같음을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격랑 속 한국 사회가 역동적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에서 성사된 대담이었다.
태 전 공사는 2013년 4월 북한이 파견한 외교관 자격으로 영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3년4개월 동안 근무했다. 그는 2016년 8월 가족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귀순했다. 탈북 외교관 중에서 최고위급이었다.
라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경희대에서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1차장을 거쳐, 2001~2003년 영국 주재 한국 대사를 역임했다. 이때 영국에서 태 전 공사와 처음 만났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일본 주재 한국 대사로 일했고, 우석대 총장과 한양대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 가천대와 국방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태 전 공사와 라 교수의 대담은 3월 10일 오전, 월간중앙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경호원들과 차량으로 함께 움직이는 태 전 공사가 먼저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사옥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차장에 정차된 차 안에서 라 교수를 기다렸다. 라 교수가 곧 도착하자 태 전 공사는 차에서 나와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대담 장소로 같이 자리를 옮겼다. 라 교수를 향한 태 전 공사의 예우였다.
라 교수도 태 전 공사를 만나자 “2001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지. 18년 만에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고 반겼다. 태영호 전 공사도 “그러고 보니 남한에 와서 인터뷰는 많이 했지만 이런 식의 대담은 처음”이라며 반가움을 표했다. 북한 바깥에서 북한을 이해하는 데 필생의 공력을 쏟아온 라 교수와 북한 내부에서 체제의 모순을 체감했을 태 전 공사는 상이한 삶의 경로만큼이나 북한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다르리라 여겼다. 그 생각의 차이와 같음을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격랑 속 한국 사회가 역동적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에서 성사된 대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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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 18년 전보다 나빠졌다”
두 분이 한국에서 재회하게 된 게 얼마 만인가?
라종일_ 2001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다. 그땐 희망이 컸었지. 북한을 많이 도와주고 교류하고 화해하고 협력하고 그러는 사이에 궁극적으로 통일까지 이룰 수 있지 않나 했는데…. 태 공사를 18년 만에 다시 만났는데 현실은 그때보다 훨씬 나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태영호_ 2000년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났고, 6·15 공동선언이 있었으니 당시 북한도 기대감이 컸다. (영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라 대사께서 내 손을 잡고 ‘진짜 우리(한국)는 공동성명대로 하려고 한다. 남한이 공격한다고 북한에서 걱정하는데 절대 그럴 일 없다. 그 진정성을 알고 가달라’고 말씀한 기억이 난다.
라종일_ 영국 대사 시절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북한 학자 3명을 초청하도록 주선한 적이 있다. 방문객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룸에서 밤을 보내도록 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서 놀라더라. ‘1인용 방마다 한 명씩, 객실 셋을 마련했는데 3명이 한 방에서 같이 잤다고 했다. ‘따로 자면 후일 당국에서 의심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케임브리지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지. 이렇듯 바깥의 기준으로 보면 북한을 전혀 이해 못 하게 된다. 트럼프도 이런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북·미 협상이) 깨진 것 아니겠나.
예상 밖이다.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된 원인을 어떻게 보는가?
태영호_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핵화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결단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 비핵화 의지가 없는데 외부에선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했다’고 오판한 거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도 ‘트럼프한테 협상 기술을 잘 쓰면 무언가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오판했다. 결렬이 된 데에는 북한의 잘못도 있지만 한국, 미국의 잘못이 대단히 크다. 북·미 회담 보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스몰딜, 빅딜 얘기들이 나지 않았나. 김정은이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받아가겠는지, 이런 얘기들 말이다. 이런 말이 자꾸 나오면 북한이 오판할 거라고 내가 계속 말했었다. (북한이 오판할 만한) 그런 환경을 외부에서 만들어 놨다고 생각한다.
라종일_ 내가 운영하는 카톡방이 있는데 하노이 회담 시작 전에 ‘잘 안 될 거다’라고 썼던 적이 있다. 나라고 확실히 알았을까? 태 공사 말씀처럼 (구조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는 회담이었다. 서로가 상대를 너무 이해 못 하고 있었으니까. 북한의 안보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북한 정권에 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북한의 불안은 안보, 군사적인 것이 아니다. 체제 자체에 있다. 체제가 이룬 것이 없으니까. 자유, 물질적 풍요, 평등 그 무엇도 없는 나라다. 최은희 배우의 탈출기에 나온다. ‘사회주의국가인데 왜 이렇게 불평등하냐?’라고.

사진:김현동 기자
태영호_ 2000년 남북 정상이 처음 만났고, 6·15 공동선언이 있었으니 당시 북한도 기대감이 컸다. (영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라 대사께서 내 손을 잡고 ‘진짜 우리(한국)는 공동성명대로 하려고 한다. 남한이 공격한다고 북한에서 걱정하는데 절대 그럴 일 없다. 그 진정성을 알고 가달라’고 말씀한 기억이 난다.
라종일_ 영국 대사 시절 들었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북한 학자 3명을 초청하도록 주선한 적이 있다. 방문객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룸에서 밤을 보내도록 했다. 그런데 다음 날 학교에서 놀라더라. ‘1인용 방마다 한 명씩, 객실 셋을 마련했는데 3명이 한 방에서 같이 잤다고 했다. ‘따로 자면 후일 당국에서 의심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케임브리지 사람들은 몰랐던 것이지. 이렇듯 바깥의 기준으로 보면 북한을 전혀 이해 못 하게 된다. 트럼프도 이런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북·미 협상이) 깨진 것 아니겠나.
예상 밖이다.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된 원인을 어떻게 보는가?
태영호_ 북한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핵화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결단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 비핵화 의지가 없는데 외부에선 ‘김정은이 비핵화 결단을 했다’고 오판한 거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도 ‘트럼프한테 협상 기술을 잘 쓰면 무언가 얻을 수 있지 않겠나’ 오판했다. 결렬이 된 데에는 북한의 잘못도 있지만 한국, 미국의 잘못이 대단히 크다. 북·미 회담 보름 전부터 대한민국에서 스몰딜, 빅딜 얘기들이 나지 않았나. 김정은이 무엇을 내놓고, 무엇을 받아가겠는지, 이런 얘기들 말이다. 이런 말이 자꾸 나오면 북한이 오판할 거라고 내가 계속 말했었다. (북한이 오판할 만한) 그런 환경을 외부에서 만들어 놨다고 생각한다.
라종일_ 내가 운영하는 카톡방이 있는데 하노이 회담 시작 전에 ‘잘 안 될 거다’라고 썼던 적이 있다. 나라고 확실히 알았을까? 태 공사 말씀처럼 (구조적으로) 안 될 수밖에 없는 회담이었다. 서로가 상대를 너무 이해 못 하고 있었으니까. 북한의 안보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북한 정권에 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북한의 불안은 안보, 군사적인 것이 아니다. 체제 자체에 있다. 체제가 이룬 것이 없으니까. 자유, 물질적 풍요, 평등 그 무엇도 없는 나라다. 최은희 배우의 탈출기에 나온다. ‘사회주의국가인데 왜 이렇게 불평등하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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